서울 서대문구 소재 청년주택 공사 모습. [사진=송이 기자]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급격히 줄어든 자리를 월세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매매 억제와 갭투자 차단을 겨냥한 규제가 임대 공급 경로를 좁히면서, 올해 서울 아파트 월세 상승률이 연간 기준 처음으로 3%대를 넘어섰다.
2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울 아파트 월세는 누적 기준 3.29% 상승했다. 상반기까지 비교적 완만하던 상승세는 하반기 들어 급격히 가팔라졌고, 10월과 11월에는 월간 상승률이 0.6%대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경기 요인보다는 전세 공급 축소에 따른 구조적 변화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 실거래 사례에서도 월세 상승 흐름은 뚜렷하다. 강남권에서는 청담동 에테르노 청담에서 보증금 40억원, 월세 4000만원 계약이 이뤄지는 등 고가 월세 거래도 늘고 있다.
서울 외곽에서도 월세 오름세가 가파르다. 도봉구 창동 주공17단지 전용 49㎡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세 계약을 찾기 어려웠던 단지지만, 최근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700만원대 계약이 체결됐다.
도봉구 창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매물이 거의 없어 임차인들이 처음부터 월세를 전제로 집을 보러 온다”며 “작년 같으면 성사되기 어려웠던 월세 금액도 요즘은 별다른 조정 없이 계약된다”고 전했다.
영등포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도 “전세를 찾다 포기하고 월세로 돌아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선택지가 없으니 가격 협상력이 임차인 쪽에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임대차 거래 구조 변화로도 확인된다. 올해 들어 서울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 비중은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세가 주류였던 과거와 달리, 월세가 기본 거래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전세대출 규제와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실거주 의무 적용으로 전세를 통한 임대 공급이 줄어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월세가 오른 것이 아니라 전세가 밀려난 것”이라며 “전세를 통해 공급되던 임대 물량이 차단되면 가격은 남아 있는 월세 시장에서 조정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월세 부담은 이미 가계 구조를 압박하는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40만원대를 넘어섰고, 중위 월세도 120만원을 상회하고 있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월세 문제는 특정 계층이 아닌 도시 거주 전반의 비용 문제로 번지고 있다.
박원갑 KB부동산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는 임대차 시장에서 가격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왔지만, 이 기능이 사실상 사라졌다”며 “전세 감소와 월세 상승은 분리된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이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가 예정된 가운데, 매매 시장 관망세가 이어질 경우 임대 수요는 쉽게 줄지 않을 전망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6년 전국 아파트 입주예정 물량은 21만387가구로, 올해(27만8088가구)보다 24.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