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LH 투기사태로 바닥난 신뢰, 또다시 꺼내든 부동산 적폐청산 카드

신혜영 칼럼니스트 cclloud1@gmail. 승인 2021.03.21 09:09 | 최종 수정 2021.03.21 09:10 의견 0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쏘아올린 신도시 투기의혹으로 나라가 온종일 뒤끓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고 안정화를 이루겠다”고 거듭 말해왔으니 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연일 계속되는 부동산 정책 실패는 현 정권의 지지율을 꾸준히 떨어뜨려 왔고 이번 LH 투기사태는 정권의 레임덕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5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8~12일 전국의 유권자 2천510명을 대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긍정 평가는 37.7%, 부정 평가는 57.4%로 집계됐다. 전주와 비교하면 긍정 평가는 2.4%p 하락하고, 부정 평가는 1.7%p 상승한 결과다.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의식주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문제에서 신뢰를 잃었기에 이를 다시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천장을 뚫을 기세로 치솟는 집값과 막혀버린 대출길에 눈앞이 캄캄한 국민들이 많았는데 정작 세금을 녹으로 먹고 국민을 위한 업무를 보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판을 벌이고 있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없게 하겠다”던 대통령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은 15일 “정부는 단호한 의지와 결기로 부동산 적폐 청산 및 투명하고 공정한 부동산 거래질서 확립을 남은 임기 핵심 국정과제로 삼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자산 불평등이 날로 심화하고 있다”며 “불공정의 뿌리인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여러 분야의 적폐 청산을 이뤘으나 부동산은 그저 시장 안정에 몰두했을 뿐 적폐 청산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부동산 적폐 청산이 우리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정신을 구현하는 일이자 가장 중요한 민생문제라는 인식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여당 주요 인사들도 한마디씩 덧붙이며 나섰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문 대통령의 부동산 적폐청산 선언에 “잠자고 있는 토지공개념 부활이 부동산 개혁의 최고 목표이자 지향”이라며 “부동산 적폐는 한국 경제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온 국민이 부동산 불로소득 혁파를 요구하는 지금은 역설적으로 부동산 개혁의 결정적 기회”라며 “그야말로 최대치의 강도로 개혁에 돌입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또 “부동산 가격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은 최대한 환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LH 직원 신도시 투기사태는 반드시 철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사안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적폐’라는 추상적인 말로 국민의 판단력을 흐린 후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에 불쑥 끼어들어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비상식적인 규제를 내놓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LH 직원들이 사익을 위해 내부 정보를 이용해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방지의 의무’와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를 위반했다는 것이며, 공공주도의 개발에서 이러한 비리가 터졌다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인데, 은근슬쩍 토지공개념을 꺼내드는 것은 이때다 싶어 그동안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끼워팔기 하려는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국가주도 사업에서 터진 비리에 대한 대처로서 국가가 부동산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앞서 문 대통령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해 자산 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기에 불공정의 뿌리인 부동산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그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서울에 집 있는 자와 집 없는 자 사이에 존재하던 사다리가 무참히 끊어진 것은 벌써 까먹었나 보다. 아직 사다리를 오르지 못한 사람들, 열심히 오르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이쯤되면 적폐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현 정권으로부터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말을 수백번은 더 들은 것 같다.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무엇이 적폐였는지, 그들이 적폐라고 주장하는 것을 제대로 청산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답을 할 수 없다. 부동산 적폐청산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번 적폐청산은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관련자를 적절히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등의 상식적인 선에서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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