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순살아파트가 섬뜩한 이유

신혜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08.24 11:01 | 최종 수정 2023.08.24 11:20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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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순살아파트’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우스갯소리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굉장히 섬뜩하다. 그러나 이름처럼 아파트의 뼈대인 철근이 완전히 없지는 않다. 다만 설계 및 시공 단계에 오류가 있어 자칫하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최근 철근이 누락된 아파의 대부분은 무량판 구조였다. 무량판 구조는 수평 기둥인 보 없이 기둥이 상판을 지탱하게 만든 건축 구조다. 보가 없기 때문에 지하 주차장에 적용할 경우 땅을 덜 파도 돼서 비용이 절감된다. 또한 보가 없는 만큼 층고를 높게 할 수 있어서 요즘 고층 아파트에 무량판 구조를 많이 적용하고 있다.

무량판 구조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부실시공할 경우 기둥이 슬래브를 뚫고 각 층이 아래로 떨어져 순식간에 연쇄 붕괴가 일어난다. 따라서 설계와 시공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무량판 구조는 천장을 지탱하는 게 기둥뿐이라 천장과 기둥을 결속시켜주는 전단보강근이 필수 요소다. 그러나 국토부가 지난 30일 발표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전수조사를 보면 설계 때부터 보강근이 누락되거나 설계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구조를 제대로 계산해놓고 현장에 배포하는 상세도로 옮기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일도 2건 있었다. 보강근 구조 계산을 안 하거나 계산이 잘못된 곳도 7개 단지에 달했다. 단순 계산 실수, 보강근 적용구간 설정 오류, 계획 변경 구간에서 계산 누락 등이 원인이었다.

안홍섭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LH가 설계를 발주하면 그중 일부를 구조설계사들에게 주고 다시 쪼개어 하청에 발주하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며 “그 과정에서 실력이 부족한 기술자가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건설사 관계자 A씨는 “LH 퇴직자들이 넘어간 일부 회사가 무량판 설계를 거의 독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주한 아파트 2개와 곧 입주가 예정된 아파트 1개는 모두 보강근이 단순 누락된 것으로 파악됐다.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현장에서 의도적으로 보강근을 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벽식공법 등에서처럼 관행적으로 철근을 필요 이상으로 설계에 반영한 것인줄 알고 몇 개씩 뺐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공사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보강근을 설계보다 줄여 넣는 일도 있다.

사실상 현재의 감리제도로는 설계와 시공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막기 어렵다. LH 발주 현장에서 감리 업무를 여러번 맡았던 B씨는 “도면대로 시공이 되는지 확인하는 게 기본적인 감리 업무”라고 하며 “설계부터 잘못된 것은 감리나 시공사가 잡아내 문제삼기 어렵다”고 전했다.

따라서 건축 구조 전문가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감독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현행 건축법 23조에 따르면 건축물 설계는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구조기술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민 부회장은 “건축사가 구조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며 “영국의 세이프티 코디네이터처럼 발주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안전 책임 전문가가 현장에 상주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일에는 철근이 빠진 LH 아파트가 당초 발표보다 5곳 더 있던 걸로 확인돼 또다시 파장이 일었다. 이에 LH 임원 4명이 사퇴했으나 이들의 임기는 이미 끝났거나 임기 만료를 한달가량 앞둔 것으로 확인돼 인적 쇄신안이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실 철근 빼먹기는 과거부터 원가를 줄이기 위해 관행적으로 악용되어왔다. 있어야 할 곳에 철근이 없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다. 정상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면 거뜬히 버틸만한 충격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1970년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등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대형참사는 부실공사, 불법 증·개축이 원인이었다.

자칫하면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과거 부실공사가 2023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시민들과 아파트 입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단순히 사과나 자진 사퇴로 무마시킬 수 있을만한 문제가 아니다. 위험성이 높은 아파트에 대해 전수 조사를 벌이고 건설계에 만연한 이권카르텔을 뿌리 뽑아야 한다.

주거공간의 안전성은 곧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무량판 구조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부실공사를 척결하는 대책과 시스템이 반드시 수립돼야만 한다.

신혜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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