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파트 공화국’에서 뒷전 된 비아파트

신혜영 칼럼니스트 승인 2023.11.19 23:41 | 최종 수정 2023.12.11 14:03 의견 0
[주택경제신문]

높은 곳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 보면 하늘 아래 빼곡한 아파트 단지를 볼 수 있다. 비단 서울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어떤 도시를 가도 비슷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우뚝 솟은 아파트의 존재감이 유독 두드러지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가지각색의 주거용 건물들이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의 비율은 51.9%다. 우리나라 사람의 절반 가량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나머지 절반은 아파트가 아닌 곳, 즉 非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비아파트 소유자들이 정부의 규제로 인한 생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섰다.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다세대·연립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의 불안이 증폭된 와중에 전셋값도 상승하면서 빌라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전세금반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했다. 반환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기존 공시가격의 150%에서 지난 5월부터 공시가격의 140%, 주택가격의 90%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공시지가의 126%까지만 전세 보증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작년 대비 전국 평균 공시가격이 약 18.6% 하락하면서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더 까다로워졌다.

이는 결국 비아파트 전세 거래량 감소로 이어졌다.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거래량은 4만7581건으로 작년 대비 24.7% 감소했고, 오피스텔 역시 1만6030건으로 작년에 비해 26.7% 감소했다.

갈 곳 잃은 전세 수요는 아파트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전용 면적 60m² 이하의 소형 면적 전세 시장에서 강세였던 빌라의 거래 비중이 최근에는 아파트보다 적어지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 침체가 지속되자 빌라나 오피스텔, 레지던스 소유자들은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실적인 전세보증제도 마련과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하며, 특히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가입요건이 강화된 것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가입요건 강화는 왜 문제일까? 해당 제도는 보증금을 사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로, 임대인이 보증금을 상환하지 않았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보증기관은 일정 비율의 보증료를 받고, 추후 보증사고 발생 시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준 다음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

2018년 2월, 반환보증 가입에 대한 임대인 동의 의무가 폐지된 이후 전세 보증잔액은 전방위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2018년 29조원에서 2022년 105조원으로 급증했다.

민간임대주택의 임대사업자가 의무가입해야 하는 임대보증금반환보증도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호한다. 두 공적기관에서 보증되고 있는 잔액을 더하면 대략 170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전세가격 하락이 불러온 역전세 위험과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전세사기 등으로 보증사고가 급증하면서 올해 7월까지 보증사고 금액이 2조원에 근접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반환보증 가입요건을 강화했는데, 문제는 반환보증 가입대상에서 제외된 주택이 대부분 저가주택이라는 데 있다. 이로써 저가의 다세대·연립 주택에 거주하는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호하지 못하게 됐다.

빌라는 서울 주거지의 약 30%를 차지하며 서민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빌라 소유자가 부동산 시장에서 생존하지 못한다면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도 위태로워진다. 일부는 소형 아파트로 옮겨갈 수 있겠으나, 그만한 형편이 안 된다면 고시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청년과 서민의 사다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비아파트 소유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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